디지털 효자 - 윤석순 소설집
각박한 세태에 저항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
현대판 고려장의 일상을 지적한다
-작가의 말-
온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9.11테러가 발생하기 달포 전,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 빌딩에 올라간 적이 있다. 거기서 까마득하게 아래로 내려다보이던 도시는 삐죽삐죽 솟아난 건물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힘에 뻗친 5월의 왕대 죽순처럼 삐죽삐죽 솟아난 많은 건물의 공간 속에는 어떤 사람들, 아니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하는…….
몇 년 전에는 등산 삼아 쉬엄쉬엄 서울의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보았다. 그때도 시내를 내려다보며, 내가 품었던 궁금증은 똑같았다. 저렇게 높이 솟았거나 혹은 낮게 엎드린 건물들 칸칸마다에는 어떤 사연 내지는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하고.
그로부터 행과 불행의 숱한 시간과 이별을 나누면서 나는 소설에 기대어 살았다. 아니, 소설을 앓고 있었다 할까. 어쩌면 지독한 홍역에라도 걸렸던 걸까, 삶을 채우는 것보다 소설을 앓는 방법을 택했으니 말이다. 때로는 의욕에 치인 나머지 소설을 놔버릴까 싶은 갈등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듯 나 자신과 치열하게 다투는 싸움꾼이 됐던 셈이다. 이유라면 3D문학이란 소설이 염치없게도 나를 압박해댔기 때문이다.
그 3D문학이 나를 외면하기 전에 내가 먼저 3D문학을 외면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치인 나 자신과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 진행형이다. 무한히 지치고, 지지리 외롭고, 견디기 힘들어 끙끙 앓으며 인내심을 키우는 것까지도.
이제는 3D문학에 갇힌 나 자신을 달래며,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다. 세상에 쉽게 태어난 소설은 없고, 고통 없이 만만하게 얻어지는 문학은 진정코 없다고, 그런 당위성은 영원할 거라고, 아마도…….
이제쯤 깨닫는 중이다. 상상을 먹고 사는 소설이야말로 나를 웃겼다 울리는 지조의 맛이 있어 나는 결코 그 손을 놔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왕창 옭아매는 문학의 진실이거나 본질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미치도록 쓰고 싶은 날이면 나는 염치 좋게 매달릴 참이다. 초심을 붙잡기 위해. 그리고 나를 풍덩 던져 넣은 상상 내지 집념의 바다에서 흔들흔들 표류하는 쪽배가 된다 해도……. 언젠가부터는 소설 앞에만 서면 얄궂게도 어떤 고통에 시달린다. 나를 담금질하는 상상의 물속에 빠져.
오호통재라! 가슴속에 진한 앙금이 된, 소설의 맛에 길들여진 지대한 슬픔이여, 오늘도 내 앞에 열린 인내의 뜰에서, 쓰다가, 또 쓰다가 한이 맺혀도 좋은 몸부림을 치고 있다. 상상의 선물인 집필의 두레박을 끈질기게 길어 올리고 싶은 욕망에 갇혀…….
한글날은 지났지만, 참으로 고맙다고, 큰 인사를 한 번 올려야겠다. 흔들린 필력으로나마 존경하고,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우리의 세종대왕님께.
못난 소설에게 매무새 좋은 옷을 입게 해준 청어 대표님과 편집장님, 감사합니다!
경북 경주 출생
《수필과 비평》 수필 신인상
《신문예》 소설 신인상
《탐미문학》 수필 우수상
황진이 문학상 수필 본상
수필집 『뒤를 돌아보는 여자』 『초록중앙선』
소설집 『아일랜드 맹세』 『디지털 효자』
작가의 말
돌들의 세상
탈출기
밭고랑에 심은 시
디지털 효자
귀촌 도전
돈 소리 구별법
그가 노총각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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