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착각
어째서 우리는 죽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처럼 구는가
“야심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커다란 행운과 재물이 굴러들어 올 것이라 믿기에 늘 무엇인가를 뒤쫓는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단지 피로와 분주한 나날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Alain)의 말이다.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하지만 천지가 개벽하듯 엄청난 발전을 이뤄낸 지금, 우리의 삶은 왜 여전히 죽어라 일하던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정신과 의사이자 이화여대 의과대학 교수로서 50년을 보낸 90세 노교수 이근후는 말한다.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방되었다면 그다음엔 다시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 줄 휴식과 여가가 필요하지만 현대인들은 열심히 살다 못해 노는 것마저도 기를 쓰고 열심히 하려 하고 평소보다 빡빡한 스케줄을 세워 몸을 움직이고 자기 개발을 한다며 또다시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너무 열심히 살아서, 나를 돌아보지 못해서 지친 사람들은 삶에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인생이란 이런 퍽퍽하고 고된 일상의 반복일 뿐 아닐까 하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에 삶이 헛되다는 생각은 불현듯 찾아오기 마련이다.
나를 향한 백만 가지 간섭과 멈출 수 없는 타인과의 비교
끝끝내 ‘나’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고, 커서는 사회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하지만 오로지 타인의 기준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나를 잊게 된다. 번아웃, 무기력증, 혹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정체 모를 불안감. 그저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위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진단은 가혹하기만 하다. 이근후 박사는 자신이 만나온 수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나를 휘두르려는 세상의 파도에 부딪혔을 때 맥없이 침몰하는 것만이 당신의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라고. 당신에겐 물살이 정해준 방향이 아니라 여전히 당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줄 굳센 지느러미가 존재한다고 말이다.
“잔잔한 수면에 조약돌을 하나 던져보자. 어떻게 될까. 일파만파 동심원이 퍼져나갈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동그라미는 위아래로 출렁이는 물결을 일으키며 나름의 사연을 만들고, 그 사연 속에는 불확실성과 불안, 실패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누군가 내 삶에 조약돌을 던지는가. 혹은 세상의 물결이 나를 흔들리게 하는가. 부레옥잠처럼 둥실둥실 떠다니든, 송사리가 되어 수면 아래를 헤엄쳐 나가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_본문 〈네모난 세상에서 동그라미로 살아남기〉 중에서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
삶이 헛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행복할까요?”
언젠가 어느 학생의 질문에 이근후는 막힘 없이 “태어나지 않는 게 더 행복합니다”라고 답했다. 인생은 생로병사를 통해 많은 고통을 겪으며 허우적거리다가 때가 되면 하직하는 과정이니 마냥 행복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러니 태어나지 않는다면 고통도 행복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렇다면 아흔의 노교수는 어떻게 여전히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고통이며 공포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행하다. 하지만 고통과 공포조차도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은 인생을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욕망과 만족, 행복과 불행, 사랑과 증오 사이를 떠돌며 산다. 행복하게 마음 편히 살자고 다짐하다가도 여전히 눈앞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갈아 넣고, 타인과 매일 투덕거리면서도 살을 부대끼고, 그리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증오해 마지않는 애증의 가족들과 따듯한 식사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다. 삶의 모난 면과 매끈한 면 이 모두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게 될 것이다. 인생에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고. 아직 내 시선이 가닿지 않은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봄볕이 있을 거라고.
이화여대 명예교수.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 때 6·25 전쟁을 겪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단칸방을 전전했고, 대학 시절 4·19와 5·16 반대 시위에 참여해 감옥 생활을 하는 바람에 한동안 취직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과 가난이 사람의 의지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시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그제야 비로소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 국내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었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도입했으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정신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퇴임 후에는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을 활발히 진행했다. 더불어 35년 넘게 네팔에서 의료 봉사를 했고, 복지법인 광명보육원 이사로 50년 넘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도왔다. 또 그를 주축으로 결성된 ‘예띠 시 낭송회’는 무려 25년 넘게 문학 공부와 봉사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2013년에 출간해 40만 부가 판매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비롯해 40년간 모두 20여 종의 책을 썼다.
사람들은 그에게 자주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순하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인생에는 뜻대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군다나 삶은 예기치 않은 시련에 가장 크게 흔들린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는 일을 해결해 보겠다고 집착하면 인생이 힘들어진다. 오히려 인생의 시련은 일상의 작은 기쁨들로 인해 회복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취해야 하는 유일한 삶의 태도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받아들이되, 지금 여기에 있는 작은 기쁨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 누리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즐거움이 쌓여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인생이 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생은 유독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2011년 76세의 나이로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2003년부터 22년째 3대 13명이 한집에서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가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흔이 된 그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과거에 대한 부질없는 후회나 피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마음껏 한번 찾아보라고. 사소한 기쁨을 잃지 않는 한, 절대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이것이 바로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살아야 하는 진짜 이유라고 말이다.
서문 |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1부 삶이 헛되다는 생각은 불현듯 찾아온다
내가 누구냐 묻는다면
어찌 우리는 죽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처럼 구는가
산다는 건 깊은 고독 속에 있는 것
트라우마에 잠겨 죽지 않는 법
노망난 자의 쓸모없는 지혜
영원한 상실감에 대하여
죽음 앞에서 담담한 사람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면
왜 우리는 불행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을까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의 무게
2부 백만 가지 참견 속에서도 끝끝내 ‘나’로 살아가리
부주의한 칭찬과 경솔한 비판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의 문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석가에게 정신과 의사가 있었더라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과 나의 오랜 악연
당신은 누구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사는가
사회는 거대한 정신병동이다
우리 삶에 끼어드는 수많은 훈수꾼
비교는 인간의 본능이다
네모난 세상에서 동그라미로 살아남기
나를 평가하는 당신은 나를 얼마나 아는가
3부 인생이란 길고 긴 터널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인연이 무엇이기에
내 옆자리의 당신
비탄에서 벗어날 골드타임
내게 필요한 건 오직 사랑이었네
나는 그저 나인 것을
이 세상 사람은 모두 비정상
귀 기울이면 모두 알게 된다
우리는 불안과 함께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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