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흑교이야기 The Story of Heiqiao
- 본문중에서
엉겁결에 가지고 온 검은 중절모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보고 있다. 지훈은 아까 자신의 옆을 뛰어간 사람을 실제로 자신이 본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있다. 그의 흔적이라고 여겨지는 모자를 눈앞에 두고 보고 있으면서도, 마치 그 짧은 순간이 꿈이 아니었을까. 마그리트의 그림에나 나올 것 같은 검은 중절모를 요즘도 쓰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의심스럽다. 모자의 위쪽은 땅에 뒹군 덕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지만, 아직 새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70년대 시골 같은 곳에서 그 때의 유행을 만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차라리 이 모자는 여기보다는 상하이에나 어울릴 물건이다. 현재의 시간과 아무 관련이 없는 물건이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는 것에 지훈은 당혹스럽다. 모자를 처음 집었을 때의 눅눅한 느낌과 잠시 맡았던 장미향이 그의 흔적처럼 느껴지는데 반해, 오히려 실제로 만져지는 이 검은 중절모는 이름 모를 그가 남긴 흔적이라기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파편처럼 느껴진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본다. 모자에서 희미하게 꽃향기가 배어나온다.
책 소개
목차
저자소개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미술작가로 활동중.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에 참여중. 주요전시 [Tu] 금호미술관 2011, Korea Tomorrow 예술의 전당 2011, 상상적 진실 175갤러리 2011, 히스테리 갤러리 루프 2010, 살로,주인들의 비열한 규칙들 2009, 불량배:타자들의 이미지 갤러리 쿤스트독 2008, Blow up 갤러리 정미소 2007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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