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緣). 1
안개 속으로 발을 디뎌보라는 그의 말에 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들의 무리가 안개 속으로 밀려갔다. 수향도 무리에 떠밀려 안개가 잔뜩 끼어 앞이 보이지 않는 강으로 들어갔다. 무리에 떠밀려가면서도 그녀는 남편에게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머릿속에서 남편에게 했던 약속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그 소리에 집중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이상했다. 분명히 무리가 함께 움직였는데 안개 낀 강으로 들어서자 홀로 있는 느낌이 다가왔다. 왠지 서늘한 느낌도 다가왔다. 그녀는 팔을 휘저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그녀의 기억에 한 번도 겁이 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았다. 남편이 옆에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녀는 남편을 떠올렸다. 여전히 남편의 모습은 또렷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이내 그의 모습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는 빠져나가고 없었다. 대신 기억의 밑바닥에서 그녀의 입술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휴-.
- 1권 본문 중에서
저자 :
한이안
작가 한이안은 전라북도 익산군 망성면에서 나고 자랐다.
망성초등학교, 강경여자중학교, 이리여자고등학교, 전북대학교 사범대학을 거쳐 고등학교 교사로 21년 6개월간 근무하고 2011년 2월 28일자 명예퇴직을 하였다.
현재는 논산에서 텃밭을 가꾸며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연]으로 라떼북에 처음 데뷔하며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생과 사와 관련한 다소 운명론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그러한 운명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연]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가의 저서로 [촌닭, 빌딩 숲에 둥지를 틀다]가 있다.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작품이 남기는 여운에 빠져있게 만드는 한이안 작가의 필력으로 보아 앞으로 작가의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무척 기대가 된다.
1. 이별
2. 영계로
3. 불완전한 입문
4. 휴의 잔상
5. 떠도는 영혼을 위한 결정
6. 첫 외출, 그리고 낙담
7. 세상 밖으로
8. 세상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