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주드 2
국내에 자주 소개되지 않은 명작을 발굴하여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숨어있는 명작 시리즈
"자! 토론은 그만두기로 해요. 안녕, 주드. 나의 공범자, 다시없이 친철했던 분!""잘가요 길을 잘못 든 아내여. 안녕!"" 알았어. 난 당신과 결혼했지...... 그여잔 말했었지, 당신과 재결합해 달라고. 그래서 이렇게 한 거야. 이게 진정한 종교인가! 하! 하!하!""내가 태어난 날이여, 치라리 사라져 버려라. 사내아이를 배었다고 하던 그 밤도 사라져 버려라."" 그날이여, 어둠에 뒤덮여 위에서 하느님이 찿지도 않고 아예 동트지도 말아라, 그밤은 암흑에 빠져 환성을 잃은 밤이 되어라.""내가 어찌하여 모태에서 죽지 아니하고 나오면서 죽지도 아니하였는가?... 나 지금 누워서 안식을 누릴탠데.""포로들도 한께 안식을 누릴수 있고 노예를 부리는 자들의 욕설이 들리지 않는 곳, 낮은 자와 높은자의 구별이 없고 종들이 주인의 손아귀에서 풀려 나는곳. 그런데 어찌하여 고달픈 자에게 빛을 주시고 괴로운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 비운의 주드 中 -
1840년 6월 2일 영국 남서부 도싯 주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하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네 살 때 글을 깨친 후 책 읽기를 좋아한 어머니 덕에 어릴 적부터 방대한 독서를 했다. 장래 희망은 영국 국교회 신부였으나 노동계급 출신으로서는 난관이 많은 진로를 포기하고 열여섯 살에 건축가의 도제가 된다. 1862년부터 건축가로 일하며 시인의 꿈을 키우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가난뱅이와 귀부인』을 시작으로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다.
1872년 『녹음 아래서』가 성공을 거두자 건축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된다. 이후 익명으로 발표한 『광란의 무리에서 멀리 떨어져』가 조지 엘리엇이 쓴 작품으로 의심받을 정도로 격찬받으며 이름을 알렸고, 『귀향』 『캐스터브리지 시장』 『웨섹스 이야기』 등으로 소설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힌다.
1891년 출간된 『더버빌가의 테스』는 빅토리아시대 당시의 도덕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작품으로 출판사와 적잖은 마찰을 일으켰다. 그러나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평단은 이 작품을 하디의 가장 뛰어난 성취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895년 『무명의 주드』가 공공도서관에 비치해선 안 될 책으로 화형식을 당하며 논란에 휩싸이자 60세를 목전에 둔 하디는 소설가로서 절필을 선언한다. 이후 젊은 시절의 꿈인 시에 전념하여 『웨섹스 시편』 『시간의 웃음거리』 등 여러 시집을 남겼다.
영국 왕실로부터 메리트 훈장을 받았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향 도체스터에 직접 지은 집 ‘맥스게이트’에서 1928년 1월 11일 생을 마감했다. 심장은 도체스터에 있는 아내의 무덤 곁에, 유골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