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사보(四寶).





붓, 먹, 종이, 벼루를 사보, 문방사우라.

내 벗이 몇인가 하니, 붓과 먹이라,
바윗돌에 먹을 갈랴
멈 먹으니, 벼루님이 맨몸으로
자리 잡고 눕나니,
먹물을 붓에 적셔
목판에 글 몇 자 적을까 하니,

하얀 종이 가지런히 좌정하고
앉는구나,

두어라, 이 넷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랴.




















1.
첫사랑의 여인같이
-사보(寺寶).




끌로 판 듯 낫으로 벤 듯
잘 든 칼로 갉아 낸 듯,

오묘하게 쑤욱 뽑아 낸
목각 몸매, 이리저리
보아본들 대목님
손재주 내 어이 짐작하랴.

화엄사 각황전 방화로
숭례문 불에 타듯
소실될 일을,
사전에 약물처리로 막아
사보를 지켰다니,

내 머리 안에 간직한
그 날렵한 목각 몸매
첫사랑의 여인같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았으니
천만 다행한 일일 수가.















2.
문명이 변하는 일은
-사보(私報),




우리 사는 세상 디지털 발달로
전신, 편지 모두 다 떠났지만
아직도 애경사 알림은
이일보다 좋은 방법 없나니,

예전에 우리아버님 인편부고
애사 오면 아방 치간 함에,
인편경사 오면 안방 편지함에
넣었으나,
요즘은 경사는 어여쁜 종이에
사연 적어 보내주나,
애사는 전화 한통 연결, 연결
이어주고, 손 전화문자가
빠른 통신 이어주는 사보라.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으니
문명이 변하는 일은 강산보다
빠른 일 같아,

세상사 모두다 어서어서
떠나간 듯 속절없기만.













3.
그대들이 보배로다.
-사보(私寶).




나에게 보물이 있다면 종이와 글자에
캔버스에 그림이 전부라면,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외손자
앞으로 오고 올 손자손녀 녀석들
또 더하여 집사람까지
우리, 우리 있는데 할 것 같다.

어느새 나의 보물 이리 많아졌는지
나는야 부자로다.

두어라, 아가야, 우리 사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 삼천리금수강산
자유 민주가 여기 있는데,
또 더하여 무엇 하랴,

그래, 그래 맞다 맞아
그대들이 보배로다. 나의 보배로다.
















4.
찬란한 희생 앞에
-사보(寫譜).




알고 싶거든 베껴야 한다.
하나하나 샅같이 베껴야 한다.

태초에 인간은 자연을 베꼈다.
자연처럼 살았다.
한 몸 되어서,

그리고는 에덴에서 쫓겨나고
그리고는 자연에서 쫓겨났다.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려가던
베껴야 한다. 자연을 베끼고
베껴야 한다. 에덴을 베끼고
베끼고 베껴야 한다.

베끼다가 싫증이 났다. 인간은
그래서 만들어냈다.
내가 신이라고, 그대도 신이라고,
그러다가 주검 앞에 모두다
무릎을 꿇었다.

찬란한 희생 앞에 서러운 눈물
흘리며 울었다.

서럽게, 서럽게.










5.
계약 파기니께로.
-사보타주.




노동쟁의, 태업을 사보타주라, 한다.

사보란 SABOT로 유럽 사람들이
신었던 나무를 파서 신은
나막신이란다.

이 신 신고 일하던 분,
배는 고픈데, 주는 밥은 적고
품삯조차 얼마 안 되니
이 나막신, 사보 벗어 일하던
기계 막 두둘겨 패서 사보타주란
말 생겼단다.

우리나라 어느 전(前)대통령님,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
말 안 되는 말씀도
우리 집 상일꾼, 소작 도지농사 일
못 해먹겠다고 오뉴월 논밭에서
소 끌던 쟁기 팽개쳐 버리고
늘어지게 낮잠 한번 자볼까 먹는 맘,
닮은 꼴 아니실는지.

그러면 안 되어라, 안 돼,
계약 파기니께로, 그러시면,

차암 안 된 당께로요.








6.
마음에 두고 어르고 싶은
-사복(思服).




다가오는 힘이 약해지면 어이하나,
다가가는 힘이 빠진다면 어이하나,

마음에 두고 어르고 싶은
사연을,
진실을,
진리를,

사복(思服)하여 잊지 않고 오래두고
기억하고 싶은 것마저,
욕심이라며 면벽, 가부좌를 트시고
무념무상 하시는 큰 스님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 언제 산사를 찾아 법문 한 번
들어 볼까 싶지만,

오늘도 해 저문 서녘하늘 바라보며
신라 진평왕 때 이인(異人)
사복(蛇福)의 전설이 생각나
망향의 정을 새록새록 느끼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마는 것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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