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봄소식



꽃망울 시샘하여
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우리 집 매화나무
기지개를 켜는구나.
바람아, 불지마라.
촛불 꺼질라.

단군성조 모시고
우리 어머님
합장배례.
























- 427 -

경작지에 얽힌 사연




논에서 밭으로 밭에서 논으로
이어지는 발길 반세기.
입 다문 물꼬에 삽자루를 세우고
아무도 오지 않는 마른논,
오뉴월 땡볕을 허수아비가 지킨다.

육자배기 풍년가 집어치고
이미자 동백 아가씨를 구성지게 불러
서른 둘 노총각이 열여섯 숫처녀를
안았단다.

초승달 넘어가는 사랑 골 콩밭에서
염병 앓다 숨을 거둔 우리 집
머슴 형아 추억 속에
모닥불처럼 피어났을 사랑의 갈증.

봄, 봄날 그 미칠 같은 봄날의 햇빛이
논에서 밭으로 밭에서 논으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 넘나들며
갈지 자 걸음만 치지 않았더라면
서울 행 열차를 타지 않았으련만,

쑤꾹새란 놈이 무엇을 좀 알았다는 듯
쑤꾹 쑤꾹 울고 간다.

북 감자 쩌 먹고 떠나간
한양 천리 길을.









- 428 -

초당(草堂) 조춘(早春)



제비 한 마리 오뉴월도 아닌데,

살얼음 금가는 소리를 듣고
강남에서 날아왔는지
정지 살강에 날아 앉는다.

하얀 아침 안개 비단같이 풀려도
아직은 춥다고 퍼덕 퍼덕
날개를 퍼덕이며,

갈증을 푼 제비가 날아간다.
양지를 찾아서,

마루에 올라서니
백로 한 마리 물 논에서 긴 목을
쑤욱 뽑아 올리는데,

선비님 한분 사립문을 여신다.

소년아,

어르신은.















- 429 -

소품




군중의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적막과 고독이
회오리처럼 휘도는데,

달빛 스민 창가에
탈춤을 추는, 열 손가락.


























- 430 -

하루의 의미




다 떠나버린 시간.

내 시간은
어느 산모퉁이에서
늦장을 부리나.

서릿발 억센
시월 초하루,
이별할 사람
보내야 할 시간.

굽이치는 인파에 얼굴을 묻고.
























관 계




삶이 때로는 아픔일 줄을
내 어린 시절엔,

아무 것도 몰랐는데,
아무 것을 몰라도 되었는데,
뒤통수를 긁적이며
순한 양처럼
웃어버리면 됐는데,
우연과 필연의 인과 관계.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넘어 서야 하기에

걸어야만 하는 우리 걸음을.
내 어린 시절엔.



















소망을 위하여




촛불을 켤거나 바람이여,
내 무궁한 소망이여,
호롱불로 진리의 광석을 녹이리라.

남산 모퉁이
목마른 가지에
파랑새 한 쌍 둥지를 틀고
내일이면 살구꽃도 피리라.

뜨거운 손길로
검은 장막 들치고 시공을 초월하여
광야여, 그대 품에 안기고 싶은
내 무궁한 소망을 위하여,

현관 문 한 켠에 걸어둘,
내일은 복조리를 사리라.

인사동을 찾아가 복조리를 사리라.
때늦은 복조리를.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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