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보름달 밤의 긴 내 말


어제는 오늘을 있게 한 장본인이었당게요
그러니까 오늘도 빼먹지 말고 살아가야 한당게로.
아무것도 모르고 흘러가는 시간의 한 귀퉁이에서
내가 본 것은 참으로, 사랑, 그것이었으며
사랑 그것으로 나는 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이 줄기찬 자극을 내 어찌 모르리.

그것은 잉여물인가. 사랑이 잉여물이란 말인가.
내가 보탠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솔직한 그대의 감정의 실마리로
우습게, 우습게 사는 것은 또 다른 웃음의 다음이니
그대는 서글퍼하지 말지어다. 누구 목소리 따라서
또 다시 돌아가랴. 회오리바람 속에
내가 휩쓸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는 다시 여기에 새날의 지평을 연다.
허구로구나. 허구로구나.
이 미친 여름 보름달 밤의 말들은 내가 나 됨으로
누구에게 즐거움을 주기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으므로
우리 모두 새날의 강당을 맡아야 하니라.

웃음도 눈물도 아닌 눈이 멀어 서러운
아픔 뒤에 꾸며지는 지연(地緣)의 강당을,
아아, 세월아, 세월아. 웃고 속고, 속고 웃어 서러운
내 쌓였던 슬픈 사연, 눈을 감고 바라보면
까닭 없이 흘려 내리는 눈물의 사연이여,
아아, 괴로워라.

서러운 고독에 고전 멜로디를 채워서 하늘로 가면,
제석대왕, 염라대왕 창칼로 무장하고,
네 이놈. 잘 왔다 잘 왔다고 말해 놓고
후려치고 엎고 엎어 치고 다리에 내 다리에
뭇매를 맞아가며 참아내야 하는 훗날.
아아, 서러워라. 참으로 서러워라. 아아, 서러워라.

사람의 흔적도 없고 사람의 말소리도 없고
사랑의 신음도 없는 황량한 사막 모래언덕 같은 공간을,
창턱에 모가지를 빼고 내가 바라본 것을,
아픔과 아픔의 끝자리에서 더러운 흐름의 소리만이
더러운 불신의 정조(情操)만이 활활 타오르는
화롯불 타고남은 재의 여진(勵振)만이 흐르고 있었다.

가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야한다.
끝 간 데까지 와버린 이 질곡의 언덕에서 내가 우는 것은
저 언덕 아래 큰 배 안의 공간 같은 허상이 있었기에
질긴 껍질을 벗어, 우리 집 울타리에 걸어 올리고,
지나간 긴 배암의 허물이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형의 몸뚱아리로 내 영혼의 밑자락을 흔들었던
나는 너를 만나 행복했고 나는 너를 만나 서러웠다.
한도 많은 이 세상에 서러움만 쌓이고
슬픔의 욕정에 몸부림하는 덧에 걸린 한 마리 벌레처럼
나래치는 날개마다 물리는 꿈 속 같은 깊은 터널,

아름다운 숲을 찾아 헤맸었는데 오늘은 어디에서
내일은 어디에서 그 꿈을 사루나?
때때치 목골래가 섧게 우는 풀숲에서
하늘로 하늘, 하늘 날아가는,

호랑나비 색깔에
묻혀 가랴, 묻혀 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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