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의 독백
경칩
창 밖에 낙엽이 날리고,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날.
나의 주위에선
마음은 마음을 만나
도란거리고 있다.
그대의 열기로 데워진
우리들의 마음이 도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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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母性) 회귀(回歸)
‘오냐 내 새끼”“어디 갔다 이제 오냐’
날 저문 저녁나절
엄니, 울 엄니, 큰 엄니, 큰 큰 엄니,
작은 엄니, 누님, 누님 우리 누님.
눈이 까맸다. 까치집 같은, 머릿결처럼 까맸다.
갈퀴 같은 엄니 손길에 철따라 열리는
가지, 호박, 고추, 무우, 시금치, 파, 마늘,
철따라 열매 맺는
보리 논보리, 밭보리, 벼 이른 나락, 늦은 나락,
밀, 호밀, 옥수수, 단수수, 목화,
‘내 새끼 이리 온’
초승 달 뜨는 뒤안길
달은 언제나 감나무에 걸려 있었다.
동생아가 먹어야 할 젖이 불어도, 엄니는
‘고추 심은 텃밭에 비료는 오늘 넣고
내일은 매생이 밭 미영을 오늘 따야 쓰것다.’
머리에 황토 묻은 수건을 질근 동여매었다.
‘엄니, 선상님이 내일 원족 간다드랑께’
‘온냐 온냐 내 새끼, 파숙지 달걀 전 싸 주께’
흙냄새, 거름냄새, 땀 냄새 맡으며
평상에 엎드려 낮잠이 들었다.
별빛이 빛나는 밤 산신령 같은 우리 외하나씨
뒷재를 넘어오시고
밤나무 골 여시와 지풍 굴 물귀신이 소곤거리는 밤.
엄니는 밤 내내 부뚜막에 불을 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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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의 독백
__어느 날 만취한 벗은 내 귀에 입을 대고 중얼거렸다.
거만하고 인정머리 없는 것, 너 모르지
그것은 사람이란 걸, 너 모르지,
삼 시 때 밥 해 먹고
눈비 내리면 지붕 아래 쪼그리고 앉아
마누라 멀긋 멀긋 바라보며
아들 딸 기른 죄밖에 없다면서
네 죄는 내가 알렸다면서
원죄를 들춰내는 사람, 너는 모르지,
니체 양반 속마음은 나 몰라도
마누라를 거둬 찬 그 양반 맘에 들었다.
신을 죽인 그 양반 맘에 들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다 가야지
신이여, 신이시여, 산이시여
죽어버린 신이시여
사람을, 사람들을,
그는 중얼거리며 내 팔에 그의 어께를 묻었다.
밤은 자정을 지나 한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밤공기를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