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주 간단명료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의 비밀 생활은 백 퍼센트 안전하게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이 ‘백 퍼센트의 안전’이 몽땅 그대로 완전 범죄의 유혹이 되어 나를 덮친 것은, 얼마 후의 일이었다.
두 사람의 비밀 생활이 시작된 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동안에 그녀의 성격이 상상도 못할 만큼 이상하다는 것이 내 눈 앞에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황폐하고 살풍경한 집 안에서 핫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물을 끓이며 나를 기다리는 동안에, 여러 가지 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는 듯했다. 물론 나는 그녀가 뭔가 특별한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치 채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처음 내 눈에 목격되기까지는 설마 이런 지독한 취미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은 먹고살기 위해 경찰 계에서 온갖 잔인한 사건에 신경을 연마해 온 나조차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의 잔혹한 유희였다.
그녀는 어딘가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온 포인터 잡종 강아지 한 마리를 부엌 바닥 위에 묶어놓고, 괴로워하며 죽는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현관을 밀었을 때에 개는 이미 피거품 속에 머리를 내던지고 눈을 어렴풋이 뜨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바닥 위에 남아있는 피투성이가 된 고통의 흔적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끼쳤던 것이다.
“호호호호……. 왜 더 빨리 오지 않았어요. 당신에게 보여 주려고 묶어뒀던 건데.”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저자 :
유메노 큐우사쿠 Yumeno Kyusaku
탐정괴기소설작가. 본명은 스기야마 다이도. 후쿠오카 출생. 아버지 스기야마 시게마루는 정치적 거물이었다. 탐정 소설을 쓰는 동시에 전위적이고 초현실적인 환상과 기괴함, 호러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게이오 대학 문학부에 들어갔으나 자퇴하고 고향에서 농장을 돌본다. 그 후 노동자, 중, 기자 생활을 거치며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오시에의 기적>은 에도가와 란포의 격찬을 받은 작품이고, 일본 3대 기서인 <도구라마구라>를 비롯하여, <병속의 지옥>, <이누가미 박사>등 수많은 작품이 있는데, 47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급사했다.
참고로 <도구라마구라>는 읽으면 한 번쯤은 정신이상을 일으킨다는 설로 유명하다.
옮긴이 ？ 곽은숙
현재 일본 추리소설 및 의학？인문서적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인하대 일어일본학을 전공하고 1995년 추리소설 <컴퓨터의 덫>(오카지마 후타리, 전 여울출판사)의 번역출간을 시작으로, 의학 해부생리 교과서 <우리몸의 신비> 번역서도 올 여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전 영역을 다루는 일어원서 번역에 욕심이 많지만, 특히 일본추리 및 미스터리 소설에 가장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역자 후기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교정까지 완성된 나의 번역본을 받아들면, 가슴이 떨려 쉽게 뚜껑을 열지 못한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었던 아기를 낳고, 첫 대면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느 날 다락방 구석에 백 년 동안이나 잠들어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유메노 큐사쿠’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단편이 주는 간결한 여운이 좋아 하나하나 그의 작품을 탐독하면서, 나는 끝도 없이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그 시대 상(1930년대)을 유추하면서 그 시대에도 전차가 있었구나, 전화도 있었구나, 버스도 있었구나. 하지만 놀란 것은 갖가지 인간 군상이 현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데에 있었다. 여자와 남자, 늙은이와 젊은이,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작가가 뛰어난 점은 이 모든 모델들의 역할을 본인이 직접 연기하듯 그려낸 심리 및 행동 묘사에 있다 하겠다. 여자만이 알 수 있는 예민함과 그 직업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굴욕감 등을 어찌 그리도 잘 표현해내었는지.
지금도 난 죽은 그에게 ‘빙의’될까 하여 두려워하며 이 후기를 쓴다. 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