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조 단편소설선02 자유종
자유종(自由鐘)
신소설 <자유종>은 1910년 7월 광학서포(廣學書鋪)에서 간행된 이해조의 대표 작품이며 정치소설이다. '토론소설'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으며, 소설의 처음과 끝 부분의 지문을 제외하고는 대화만으로 이루어진 점, 그리고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이란 점이 특징이다. 작중 여성들의 토론을 통해 여성의 인권문제, 자녀의 신교육문제, 자주독립사상 고취, 미신타파, 계급타파, 한문폐지문제 등의 정론(政論)·문화론(文化論)·가정생활 개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융희 2년 음력 1월 16일 이매경이라는 부인의 생일잔치에 모인 신설헌·홍국란·강금운 등 4명의 부인이 원탁회의를 하면서 토론을 벌이는데, 여권·국가·학문·종교 등 이 나라의 모든 분야에 대해 한 마디씩 자신의 소신을 발표한다.
전반부에서는 신학문의 중요성, 여성의 권리신장, 자녀교육과 자주독립, 적서(嫡庶) 차별과 지방색 타파, 미신타파, 한문폐지와 한글의 문화성과 그 주체성을 강조, 평등사상과 민주정신을 강조하는 등 현실비판적 토론이 주요 내용인데, 특히 국가발전을 위한 신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후반부에서는 4명의 부인의 꿈이야기를 통하여 지향하는 이상적 사회를 그렸다.
***이 작품은 소설의 완결성보다는 개화기 지식인의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내용과 사상면에서 주목받는다. 양반 여성들을 내세운 관념적인 토론과 대화로만 일관하는 단조로운 구성이라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국권회복을 위한 반봉건·반외세 정신과 근대화를 지향하는 계몽정신은 다른 신소설 작품들과 확실히 구별된다.
이해조(李海朝, 1869.02.27∼1927.05.11)
일제강점기의 언론인이자 신소설가
호는 열재(悅齋) 이열재(怡悅齋) 동농(東濃)
필명은 선음자(善飮子) 하관생(遐觀生) 석춘자(惜春子) 신안생(神眼生) 해관자(解觀子) 우산거사(牛山居士)
1869년 2월 27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 121번지에서 출생
1887년(19세) 어릴 적부터 한학을 수학하여 초시에 합격
1893~94(25~26세)년 무렵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 한시를 즐기던 유학자들의 모임)를 주관
1906년 11월 미완의 한문소설 <잠상태(岑上苔)>를 잡지 <<소년한반도(少年韓半島)>>에 연재
1907년 제국신문에 입사. 대한협회(大韓協會) 가입하여 교육부 사무장 역임
1907년 제국신문에 신소설 <고목화> <빈상설> 연재
1908년 <고목화> <빈상설(?上雪)> <홍도화> <구마검(驅魔劒)>(미신타파 주장) 등 단행본 발간
1908년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 가입
1908년 베르느(Verne, J.)의 〈철세계(鐵世界)〉를 번역소개
1909년 <원앙도(鴛鴦圖)> 발표
1910년 <만월대> 발표
1910년 매일신보에 입사
1910년 매일신보에 <화세계> <화(花)의 혈(血)> <옥중화(獄中花)> 연재
1910년 소설 <자유종(自由鐘)> 발표
1910년 신소설 <홍도화(紅桃花)>(동양서림) 발표
1911년 <쌍옥적> <화세계> <월하가인> <모란병(牡丹屛)> 간행
1912년 <화(花)의 혈(血)>(춘향전을 모티브로 차용) 발표
1912년 <구의산(九疑山)>(추리소설적 요소를 지님) 발표
1912년 <소양정> <춘외춘(春外春)> <탐금대(彈琴臺)> 발표
1912년 개작소설 <옥중화> <강상련> 발표
1913년 매일신보사 퇴사
1913년 개작소설 <연(燕)의 각(脚)> 발표
1913년 신소설 <우중행인(雨中行人)>(매일신보) <소학령(巢鶴嶺)> <비파성(琵琶聲)>(신구서림) 〈봉선화(鳳仙花)〉 등 발표
1914년 시조집 『정선조선가곡』 발표
1916년 개작소설 토의 간
1918년 <홍의장군> 발표
1925년 <강명화실기> 발표
1927년(59세) 5월 11일 사망
***신소설의 창시자. 제국신문 황성신문 매일신보에 소설을 연재하였다. 쥘 베르느(Verne, J.)의 [인도 왕비의 유산(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gum)]을 <철세계>로 번역하기도 하였다(일본어 번역을 중역). 특히 [춘향전] [심청전] [별주부전] 등의 고대소설을 <옥중화> <강상련> <토의 간> 등의 신소설로 고쳐 썼다.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작품 경향은 초기 정치소설적 형태로부터, <화의 혈> <탄금대> 등의 후기 작품에서는 현실주의적인 소설관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소설의 사회계몽이라는 도덕적 기능과 오락적 기능에 대한 동시적 인식 등은 최초의 근대적인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소설은 구어체의 특징과 인물·성격의 사실적 묘사, 기자생활에서 오는 보고체 문장의식 등이 두드러지며, 고전소설의 구조적 특징과 이념형 인간들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근대적 사상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이인직(李人稙)과 더불어 신소설 확립에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
***많은 작품들이 봉건부패 관료에 대한 비판, 여권신장, 신교육, 개가문제, 미신타파 등의 새로운 근대적 의식과 계몽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고대소설의 전통적인 구조를 기본바탕으로 엮어나간 전형적인 신소설들이다. 이들은 모두 당시 사회현실을 전실하게 부각시키지 못한 결점은 있으나 개화기라는 역사적 상황을 개인적인 체험세계 안에서 비교적 포괄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작첩·계모형의 가정비극을 주제: 〈빈상설〉 〈춘외춘〉 〈구의산〉
미신 타파를 주제: 〈구마검〉
남녀이합(男女離合)을 주제: 〈화세계〉 〈원앙도〉 〈봉선화〉
한학자의 모습을 주제: <잠상태> <윤리학>
자유종
작품설명
지은이 이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