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뇌 구조(시그눔)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뇌손상 환자’다
범죄에 대한 신경과학의 대담한 제안과
이를 둘러싼 중대한 윤리적 도전들
범죄행위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오늘날의 법체계는 도덕관념에 바탕을 두고 범죄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신경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범죄는 뇌손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살인이나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서는 하나같이 심한 뇌손상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 책은 범죄와 관련된 최신 신경과학의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며, 많은 경우 범죄가 행위자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정신 질환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줄리아의 사례(5장)를 보자. 줄리아는 어렸을 때 뇌막염을 앓은 후, 간질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주변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다. 한번은 건물 복도에서 거울을 보다가 자신의 모습에서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고는, 옆을 지나가던 소녀의 가슴을 칼로 찌른 적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의료진이 줄리아의 오른쪽 편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한 이후, 그녀의 폭력적 행동이 완연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연쇄살인자 스테바닌의 사례도 있다. 스테바닌은 베갯속을 여성의 음모로 가득 채우는 망상을 가진 섹스 중독자로, 여성 다섯 명을 유인해 감금하고 성적으로 유린하다가 살해한 연쇄살인자다. 그는 재판에서 자신의 정신이상을 주장하며 감형을 호소했지만, 그의 범죄에 분노한 이탈리아 법정은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훗날 그의 뇌 MRI를 찍어본 결과, 전전두엽 부분에서 커다란 종양이 발견되었다. 전전두엽은 실수를 통제하고 충동적인 행동 욕구에 제동을 걸거나 억압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전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감정과 욕구를 서슴없이 따르는 경우가 많으며, 위험한 행동도 거침없이 실행에 옮긴다.
범죄와 뇌손상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일반화할 수도 있다. 조너선 핀커스가 1995년 〈신경학〉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살인이나 중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 가운데 3분의 2가 전두엽 비정상이었다. 또 예일대학의 심리학자 도로시 르위스는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수감자 15명을 연구한 결과, 그들 모두에게서 심한 두개골 손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지은이인 한스 마르코비치와 베르너 지퍼는 프란츠 갈Franz Gall의 골상학으로부터 시작해 범죄와 관련된 최신 신경과학의 연구 결과들을 망라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범죄와 범죄자에 대한 이해를 성립해, 신경과학의 도전에 직면한 사법체계의 모순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논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형법의 적용 대상은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이다. 그런데 뇌손상 환자는 여러 연구 결과를 볼 때, 자유의지에 의해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해서 처벌 조치보다는 치료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아울러 거짓말과 진실에 관여하는 뇌 영역을 찍은 영상을 법정 증거로 채택하자고 제안한다. 판사와 증인과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인간이기에’ 지각과 기억력이 완전하지 않으므로, 신경과학적 기술들을 사법체계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자는 것이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크게 노출된 아이들(폭력적인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이들, 정신 질환을 앓는 아이들, 제대로 된 사회규범을 접하기 힘든 환경에 있는 아이들 등)을 대상으로 범죄 예방 프로그램도 실시하자고 말한다. 폭력 유전자는 폭력 유전자를 낳고, 학대받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커서 타인을 학대한다. 뇌가 폭력적으로 굳어지기 전에 사회가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처벌 중심의 사법제도와 사회적인 규범을 수정하고 신경과학에서 밝힌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보안책을 마련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범죄 예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근본적인 윤리적 물음들을 동반한다. 범죄에 있어서는 책임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뇌손상이나 정신이상을 핑계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그것을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일반 대중들의 범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와 범죄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개인의 뇌 속을 들여다보는 뇌영상 거짓말탐지기는 피고인과 증인에 대한 과도한 프라이버시 침해는 아닐까? 범죄 예방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범죄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면, 죄 없는 아이들에게 미리부터 낙인을 찍는 것은 아닐까? 공공의 안전과 개인의 프라이버시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야 할까?
이 책을 통해 신경과학이 가까운 미래에 사회와 사법체계에 얼마나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뇌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이 사회적?윤리적 문제와 연결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르너 지퍼 (Werner Siefer)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다. 여러 매체에서 기고가로 활동하다가, 1993년부터 시사지〈포쿠스Focus〉에서 연구 및 기술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는가Ich: Wie wir uns selbst erfinden》《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Wir und was uns zu Menschen macht》들 이 있다.
한스 J. 마르코비치 (Hans J. Markowit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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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독일 콘스탄츠Konstanz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1977년 심리생리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빌레펠트Bielefeld대학 신경생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인간은 왜 기억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까Warum Menschen sich erinnern konnen》《잘못된 기억Falsche Erinnerungen》《뇌와 행동Gehirn und Verhalten》 들이 있다.
1장 뇌, 범죄행위를 명령하다 | 2장 뇌를 측정하다 | 3장 거짓말하는 뇌와 거짓말탐지기 | 4장 착각하는 뇌 | 5장 폭력의 장소, 뇌 | 6장 나쁜 사회, 나쁜 뇌 | 7장 신경과학이 법에게 묻다 | 참고문헌
한스 J. 마르코비치, 베르너 지퍼 저자가 집필한 등록된 컨텐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