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소비다
자본주의의 숨겨진 이면, 소비 미학의 상징적 힘
-상품 미학적 교육을 통한 인간의 정체성과 윤리 사회의 형성에 대하여
미학적 소비 시민의 등장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 늘어나고 있다. 길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선 각종 로드숍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각기 다르게 사용해야 할 바디샤워용품을 내붙여 사람들을 유혹한다. 매달 1위 제품을 발표하는 미용 프로그램을 비롯해, 여러 다른 기능성을 강조하는 각종 스포츠 의류들은 우리가 때마다 적절한 선택을 내리길 요구한다. 우리 곁에 쏟아지는 무수한 제품들은 또 그만큼 무수하게 상황을 분할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 상황 속에 처하게 한다. 이제 사람들 대부분은 이 같은 소비문화에 익숙해져서 때에 따라 어떤 물건을 사야 할지를 체득하게 되었고 어떤 물건을 몸에 걸쳐야 할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각 상황에 알맞은 제품을 선택해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각이 떨어진다는 시선을 받고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기에 얼마간의 제약을 받을지도 모른다.
소비가 낭비를 부추기며 계급 간의 갈등을 조장한다는 과거의 비판과는 달리, 이처럼 오늘날의 소비문화에는 한층 달라진 점이 추가되었다. 그것은 바로 소비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예절 체계의 습득 정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비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미학적, 예술적 차원이 경제적, 자본주의적 차원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고, 그만큼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야 할 차원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책 《모든 것은 소비다》의 저자인 독일의 미술사학자이자 예술학자 볼프강 울리히는 이처럼 소비문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소비품들의 현상과 그것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연구하면서 소비문화의 미학적 측면을 평가한다. 그로써 다양하게 변용되어 쏟아져 나오는 제품들을 향해 “쓸모없는 기능의 혹”(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이라 보면서 키치적인 하위문화의 범주에서 분석한 보드리야르의 시선과는 다른, 소비문화에 대한 또 하나의 획기적인 사유의 시선이 등장한다. 울리히에 따르면, 과거에 사람들이 그림이나 음악 같은 예술 작품에서 감정이 압도당하는 경험을 하고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소비품에서 그런 감정을 얻기를 원한다. 그로써 소비품의 과장된 연출이나 화려한 디자인은 더는 사람들을 현혹하는 거짓이 아니라, 아름답게 꾸며짐으로써 사람들의 감정을 고양하는 유사 예술 작품이 된다.
미래의 소비문화와 윤리 의식
그러나 오늘날 소비품이 미적으로나 예절 체계 안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부정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사람들은 상황에 맞는 상품을 사용하도록 무언중에 강요받게 되기도 하며, 심리적으로 크게 의존해왔던 물건이 없어졌을 경우 심경에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아 다양하게 세분화된 상황에 맞는 여러 상품을 구매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 계층 간의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고, 값싼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함으로써 그 제품에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게 되고 위축되는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소비문화가 거대해짐에 따라 이 같은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도 등장한다. 사람들은 넘쳐나는 물건 속에서 자신의 깨끗한 ‘양심’을 지켜줄 상품, 말하자면 환경문제에 기여하거나 공정 무역으로 물건을 생산하는 정정당당한 기업의 상품을 선택하고자 하기도 하고, 이 같은 윤리적 소비에 대한 반감으로 나쁜 이미지를 선전하는 제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기업은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제품 디자이너들과 협력해 사회를 조장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소비품들에 대한 사람들의 올바르고 합리적인 선택이 중요해지는데, 이를 위해서는 상품에 대한 미학적, 감성적 교육이 비중 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울리히의 《모든 것은 소비다》는 소비문화와 관련된 이러한 여러 문제들을 다각도에서 고찰하면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며 풀어낸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실러가 인간 교육은 모든 면에서 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책,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한 서한〉을 이어받아, 현시대의 인간 교육을 상품 미학적 관점에서 고찰해야 한다는 사상을 넌지시 비추고 있다.
볼프강 울리히
저자 볼프강 울리히(Wolfgang Ullrich, 1967~)는 독일 뮌헨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카를스루에 조형학교에서 예술학과 방법론을 가르치고 있다.
소비를 부정적 현상으로 보았던 전래의 이론에 맞서면서도, 그만큼 오늘날의 소비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보낸다. 울리히는 소비문화를 연구하면서 소비 상품들이 개인이나 사회에 대해 본격적으로 위험을 미치게 되는 여러 요소들을 발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상품 미학이 하나의 긍정적인 교육적 효과를 지녀야만 한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오늘날의 소비 상품들은 다른 대중매체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울리히의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샤워 젤, 티백, 요구르트 같은 상품들을 지금껏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될 것이며, 소비에 대한 결정을 새로운 기준으로 내리게 될 것이다.
울리히가 지은 책으로는 《정제된 예술 : 모사 훈련(Raffinierte Kunst : ?bung vor Reproduktion)》, 《소유욕 : 소비문화는 어떻게 작동하는가?(Habenwollen: Wie funktioniert die Konsumkultur?)》, 《불명료함의 역사(Die Geschichte der Unsch?rfe)》 등이 있다.
김정근
역자 김정근은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독문학과 연극학을 공부했다.
2002년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을 독일의 헬가 피히테(Helga Pichte)와 함께 독일어로 번역했다.(2002, SecoloVerlag, Osnabruck)
옮긴 책으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이 그림은 왜 비쌀까》, 《공간의 안무》, 《여자 그림 위조자》,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역자 : 조이한 역자 조이한은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인하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천천히 그림 읽기》, 《그림에 갇힌 남자》, 《위험한 미술관》, 《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 《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이 그림은 왜 비쌀까》, 《여자 그림 위조자》,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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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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