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든 인도네시아에 오는 한국 사람은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 사실 나조차도 인도네시아에 도착과 더불어 신데렐라가 된 것 같은 나만의 착각에서 살아온 듯 하지만 진정 신데렐라가 되어 있었다. 뻥이 아니니 의심치 마시기를, 아니 인도네시아로 오라 그러면 누구나 신데렐라가 된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군가는 나처럼 여왕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영원히 신데렐라에서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젊은 피를 가진 사람이라면 용기를 내서 이곳 인도네시아를 개척할 만하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무작정 오지 말고 사고 즉 지각을 가지고 와서 아름다운 기반을 잡기를 바란다. 혼자만의 노하우 즉 기술 같은 것이 있다면 이백 프로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다. 특히 이곳은 서양 문명이 우리나라에 비해 이백 년은 앞서 들어 왔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사람들의 생활 속도는 우리나라 근대 80년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한국에서 복닥복닥 지지고 볶고 싸우다 한평생 마감하지 말고 멀리 보고 깊게 이 세상을 느껴 보기를 감히 조언한다. 미국이나 뉴질랜드 같은 선진국에서 꿈을 이루어 보겠다고 떠나는 이들이 많은 요즘 한 말씀 드리자면 그곳에서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한지 묻고 싶다. 이곳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인을 참 긍정적으로 보며 또 시샘까지 한다. 피부 색깔이며 예의 바른 우리나라의 풍습을 참 많이 좋아한다. 인도네시아에서 바로 뜨는 사업은 인테리어 사업과 옷을 만드는 직업 즉 의상실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에 한참 뒤쳐진 이런 사업들이 유행의 줄을 서고 있으며 우리나라 10년 전에 이미 지나간 24시 편의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땅 넓고 할 것 많은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안에서 비싼 등록금과 경쟁에 지쳐서 고사하지 말고 넓은 땅 인도네시아에서 푸르게 자라나는 나무가 되어 배우고 미래를 꿈꾸기를 감히 바란다.
김은숙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인도네시아에 오기로 결정을 한 게 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안 그랬다. 내 나이 27세에 3년은 넘게 병원근무에 열중하며 내가 원하는 공부를 조금씩 해나가고 있을 때였으니 나름대로 아쉬움이 없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비보인지 낭보인지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도네시아로 데려간 막내아들만으로는 사업에 성이 안차니 남은 두 딸 중에 누구 한 사람이 들어와 경리를 맡아달라는 제한이었다. 지금은 모르지만 15년도 훨씬 전에 인도네시아란 나라를 우리엄마가 가계시니 우리가족은 자주 들어본 나라이지만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면 아는 이들도 별로 없었고 요즘처럼 한 네트워크나 다른 매개체로도 전혀 선전도 안 되어 있는 나라였다. 그런 곳에 단 몇 개월일지 혹은 몇 년이라 하지만 살러 가고자 하는 동생도 아니었고 나 역시 한번은 여행해 본 곳이라 해도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러니 서로 안 간다고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할 상항도 아니고 우리 자매는 싸우기도 하고 난감해 있었다.
글쓰기 전에
여왕과 나
1장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2장 인도네시아의 명절
3장 인도네시아에도 있다
4장 나라와 나라 사이
5장 그리고 뒷이야기
6장 한나 프레스
글을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