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내 고향 항구 도시 군산에는 고장을 껴안고 서해로 흘러가는 금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월명공원이 있다.

어려서부터 젊은 시절까지, 가끔 그 공원에 올라가 금강 어귀 쪽 서해 바다로 곱게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큰 즐거움이었고 또한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새만금 간척 사업과 대단위 공업단지 조성으로 인하여 공장들이 밀림처럼 가로막는 바람에 그 시절의 아름답던 낙조를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근대화를 위한 경제개발과 국토개발로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경제적 성장을 이루며 거대한 물결처럼 숨 가쁘게 내달릴 때에도 내 고향 군산은 다른 도시들과 달리 그야말로 더디게 흐르는 금강의 아주 흐린 물줄기처럼 수십 년 간 특별한 변화 없이 정체되어 있기만 하였다.

그래서 군산 사람들은 시내 곳곳에 마치 자신들의 상처인 양 끌어안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구조물들과 함께 금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탁류’라고 인식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고향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 때부터 수난의 시대를 살면서 겪어야 했던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인내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나는 고향에 들르면 월명공원에 올라가 탁류의 금강 물줄기를 바라보면서 추억에 잠기고는 하지만, 젊은 시절 그 자리에서 한편으로 문학을 꿈꾸고 나름대로의 문학을 시작하였기에 고향 군산에 대한 기억들은 어느 새 고스란히 내 문학의 모티프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고향 이웃들의 가족 이야기들도 내 문학의 화두가 되었다.

첫 장편소설 ‘그대의 절망을 위하여’는 격변하는 시대의 위기 속에 실향민으로 군산에 터를 잡고 살다가 무참하게 짓밟혀 가던 어느 월남 가족의 이야기였고, 이미 발표한 여러 편의 시에서도 고향과 가족을 소재로 다루었으며, 이번 또한 우리들의 고향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보았다.

변혁의 과도기에서 기존의 체제가 무너지고, 한 줄기 빛 같은 소박한 삶의 희망과 꿈마저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물질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탐욕과 불의와 가난 앞에 갈등과 절망으로 상실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 시절 우리들의 이야기.

자취도 없이 사라지듯 어디론가 줄달음치던 삭막한 그 시대 어느 길 한 모퉁이에서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던 그 시절의 기억 속 상자를 열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과거 속에 묵혀 두었지만, 우리들의 한 시절 삶의 어깨를 아주 고통스럽게 짓눌렀던 기억 속의 그 짐들을 이제 여기서 잠시 내려놓으려 한다.

저자소개

목차

제 1 장 무너지는 바다 
제 2 장 기다리는 사람들 
제 3 장 자라나는 음모 
제 4 장 떠나가는 사람들 
제 5 장 절망하는 그리움 
제 6 장 흔들리는 밤 
제 7 장 잃어버린 바다